늘공의 부역자 논란,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은 [임도원의 관가 뒷얘기]

입력 2022-05-29 16:48   수정 2022-05-29 16:49



윤종원 국무조정실장 내정을 둘러싼 당정 갈등이 막을 내렸습니다. 정확하게는 당정 갈등이라기보단, 여당과 총리간 힘겨루기 끝에 총리가 백기를 든 것입니다. 윤종원이란 한 사람을 놓고 당에서 앞장서 총질을 해댔고, 대통령실은 방관 내지 동조했으며, 제청권자인 총리는 혼자 끝까지 인사안을 지키려다 두 손을 든 것이죠. 물론 마무리는 윤 행장이 총리와 새 정부에 부담을 주기 싫다며 스스로 마음을 내려놓겠다고 언론에 밝힌 모양새로 이뤄지긴 했습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늘공'의 부역자 논란은 과연 무엇이 사실일까요. 총질을 시작한 권성동 여당 원내대표의 주장은 “전 정권의 경제수석으로 소득주도성장에 앞장선 사람을 새 정부의 장관직으로 임명하는 게 말이 되느냐”였습니다. 우선 늘공이 정권을 넘나드며 요직에 등용되는 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통상적으로 정권이 바뀔 경우 이전 정부에서 장·차관 등 정무직을 수행했던 사람들은 옷을 벗고 5년간 조용히 지내곤 합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홍남기 부총리가 그런 케이스죠. 직전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기획비서관을 3년 내리 지내다 미래부 차관을 끝으로 정권이 바뀌었는데, 국무조정실장(장관급)으로 화려하게 등장합니다. 사실 늘공은 영혼이 없는 사람들인 게 맞습니다. 공무원 신분이란 게 국가의 부름을 받아 일해야 하는 직업이므로 정부가 바뀌었다고 일 못하겠다고 옷벗을 수는 없죠. 물론 영혼없는 늘공이 정권의 부역자 역할을 앞장서 해놓고서 철학이 바뀐 다음 정권에서도 중책을 맡아 일한다는 건 있기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윤 행장이 소주성에 앞장섰다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 여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윤 행장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공무원들 얘기론, 윤 행장이 문재인 정부 두번째 경제수석으로 들어간 후 1년동안 마음고생이 컸다고 합니다. 김상조 정책실장 등 원조 정책라인에 둘러싸여 왕따를 당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선 크로스체크가 필요해 늘공 출신인 당시 윤 수석의 직보를 수시로 받곤 했는데, 청와대 정책라인에서 이를 꽤 견제의 시각으로 바라봤다는 것이죠. 윤 행장은 ‘포용적 성장’에 대한 철학이 원래 강했지만, 그렇다고 당시 소주성 정책들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는 게 주변 얘기입니다. 실제 윤 행장은 당시 일방적 소주성 정책 기조를 혁신과 포용적 성장 기조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문 정부가 뒤늦게 시스템반도체와 바이오, 미래차 등을 중심으로 미래 성장동력 투자에 적극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당시 윤 수석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둘째, 이번 사태를 보면서 사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겁니다. 과연 권성동 원내대표의 단독 플레이였을까. 권 원내대표는 본인의 공격에도 총리가 마음을 굽히지 않자 인신공격까지 나섭니다. ‘윤종원이 독선적이고 후배를 배려하지 않은 스타일’이라는 식입니다. 당사자로선 모멸감까지 느낄만한 표현입니다. 윤종원 국조실장 내정설이 나돌자 대통령실에는 온갖 투서가 난무했다고 합니다. 그 중 상당수는 공무원들이 익명으로 올린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갖가지 마타도어가 가득했을 게 뻔합니다. 윤종원은 기재부 출신 중에서도 선이 매우 뚜렷한 사람으로 인식됩니다. 모든 사안에 대해 본인 생각과 소신이 뚜렷하고, 그만큼 색깔이 분명합니다. ‘존재감’이 남다른 만큼 그를 부담스러워하는 시선도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가 각 부처 업무를 조율하는 국무조정실장으로 갈 경우 정책 주도권을 놓고 대통령실, 기재부와 경쟁이 벌어질 텐데 결코 밀리지 않을 사람이죠. 당연히 대통령실도, 기재부도 그의 부상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대통령실 참모들 사이에 그의 인선에 대해 반대론이 강했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가론을 올린 것도 이런 것과 무관해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정황에 비춰보면 ‘윤종원 반대’는 권 원내대표 단독 의사가 아니라 대통령실과의 교감에 따라 이뤄진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 이번 사태로 어찌됐건 윤 대통령이 내세웠던 ‘책임총리제’는 상당부분 빛이 바랬습니다. 국조실장은 총리를 보좌해 부처간 업무 조율을 맡게되는 만큼, 사실상 총리가 인선 권한을 갖는 자리입니다. 물론 역대 국조실장은 총리 의사와 무관하게 대통령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임명하는 게 다반사였죠. 그러다보니 총리와 국조실장 사이가 틀어진 경우도 여럿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때 초대 국조실장을 맡았던 김동연씨가 돌연 사임한 것도 당시 정홍원 총리와의 갈등 때문이란 게 정설입니다.

하지만 새 정부들어 윤 대통령은 책임총리제를 전면에 내세웠고, 실제 한덕수 총리는 상당수 장관들에 대해 제청권을 행사했습니다. 윤종원 국조실장 내정도 한 총리가 직접 윤 행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통보했다고 합니다. 한 총리 입장에선 총리실이 힘을 가지려면 윤종원 같은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그립이 센 사람이 필요했을 겁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된 최상목을 설득해 경제수석으로 데리고 간 케이스와 비슷합니다. 어쨌든 윤종원 국조실장은 한 총리 인사였고, 대통령실에선 마뜩지 않았지만 책임총리제 명분 때문에 대놓고 거부를 못했던 것이죠. 그런 와중에 당에서 총대를 메고 총질을 시작했고, 대통령실도 가세해 불가론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면서 결국 ‘윤종원 낙마’라는 결론을 낸 것입니다. 그 결과 묵묵히 일하던 한 명의 공직자는 ‘부역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회복불능 지경으로 몰리게 됐는데, 국가를 위해 40년 가까이 열심히 일한 공무원에게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닐까요.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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